영화 '우수' 포스터.

"얼마나 잘못 온 거야?"

대사가 현실적이고 상식적이었다. 일상에 투명한 카메라를 가져가 촬영한 느낌.

 

"일본으로 이민 갈 거다." 아니면 "사실 결혼했고 애가 둘 있어."

실없는 거짓말에는 무의식에서 새어나온 목적이 숨어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친했던 친구가 죽었으니 장례식은 방문하는게 도리.

설령 다른 의도가 있었더라도,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고 해도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상식적으로.

"배 안고파?"
"안 먹어. 장례식장까지 참을거야."
"아무튼 휴게소는 들린다? 나 화장실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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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와 이데올로기 (2021, 양영희 감독)  (2) 2022.11.16

 

"나는 4.3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며 자책하던 양영희 감독의 눈물은 본인,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향한 원망 같기도 하였다.

나 또한 왜 더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자책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닭 백숙을 만드는 장면이 총 세 번 나온다.

처음에는 도쿄에서부터 올라온 일본인 사위를 위해 어머니 강정희가 만들어준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사위와 함께 만들며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 방법을 토대로 마지막에는 사위 혼자서 백숙을 요리한다.

처음으로 딸 영희에게 4.3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니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70년이나 지났지만 4.3에 관해 인터뷰를 할 때에도 "내가 다 지난 일이라서 이제야 얘기하는거지"라며, 마치 금기된 이야기를 하듯이 이야기하던 강정희 씨.

총명한 눈빛에 항상 호탕하게 웃던 어머니는 치매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또 잊고만 싶었던 4.3 사건을 떠올리면서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한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4.3 희생자들을 기리는 수백 개의 위령비 앞에서 어머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영희는 그제서야 "너무 힘든 일은 자꾸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라고 하며 어머니를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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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2022, 오세현 감독)  (0) 2022.11.30

‘모어’ 국회 상영회 2022.09.16

드랙퀸 모지민 ‘모어’의 인생을 다룬 영화, ‘모어(I am more)’가 국회에서 상영되었다.

드랙도 국회에 올 수 있어. 같은 사람이야, 날 봐.

예전에 국회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그 분위기가 마냥 어색하고, 그 곳에서 일하는 모두가 성소수자에 배타적일 것 같아 위축되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상영회를 보러 온 사람들 덕분에 국회를 조금 더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한 명의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모지민씨의 삶을 다룬 영화. 한국 성소수자라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들. 혐오성 폭력, 폭언, 그리고 자살 시도. 아, 이 사람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영화는 성소수자보다도 비성소수자가 봐야만 느끼는 점이 더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어’가 겪어온 고통들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많은 성소수자들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발레리나 복장이 걸쳐진 마네킹에 다가가, 그 스커트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팔을 활짝 펼쳐서 끌어안는 ‘모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발레에게 형태가 있었다면. 모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발레 - 그 발레라는 예술을 그렇게 끌어안고 싶었을 것이다. 예술은 도피처이자 안식처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드랙퀸 모어 본인과, 뮤지션 이랑이 무대에 올라와 드랙공연을 선보였다.

공연 중에는 휴대폰 빛이 너무 밝을까봐 사진을 찍지 못헀다. 공연이 끝나고 Q&A 세션을 준비하는 모어의 모습.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까”
- 이랑, 곡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생각해본다' 中

공연이 끝난 후에는 이번 시사회를 주최한 장혜영 의원까지 올라와, 세 명이서 질문 세션을 진행했다. 관객으로부터 받은 인상적인 질문 중 하나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였다. 무대 위의 세 명의 답변이 너무 제각각이면서도 각자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잘 드러내주어 재미있었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식이었다:

모어(드랙퀸) : 저는 너무 미운 사람은 포기하는게 더 편한 것 같아요. (생략)
이랑(뮤지션) : 저는 아무래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다보니까, 정말 미운 사람을 보면 오히려 그 사람의 특징을 최대한 빨리 기억해두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는건, 저 혼자만의 상상력으로는 그 사람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장혜영(국회의원) : 저도 이랑님과 비슷한데요, 저도 조금은 인류학적 관점으로 (웃음)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 국회에서도 그렇지만, 차별과 멸시를 하는 사람들 보면 다 그렇게 해도 잘만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보통 차별받는 사람보다 권력을 더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한편으로는 더 약자인 내가 왜 나보다도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애써야 하는가 하면서 화나기도 하지만요. 또, 보통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나에게서 제일 가까운 사람일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찾은 해결책은 그냥 '거리 두기'였습니다. 계속 부딪히면서 고통받기보다는, 물리적으로 거리를 조금 떨어뜨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장혜영 의원이 모어와 이랑에게 각자 국회에 남기고 싶은 발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차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것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아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다.)

이랑 - (중략) 아까 드랙 퍼포먼스에서 제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는,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 보면서 쓴 거였거든요. 우리가 보통 미디어에서 비치는 국회의원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하면서 으스대잖아요? (관객 웃음) 자기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걸 텐데, 사실 이름은 저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이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 한 명 한 명이 살아가는 삶, 그 하루를 상상해 보면, 쉽게 차별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국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조금 더 상상력을 가지도록 노력해 보셨으면, 평범한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그런 상상력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모어 - “왜 나는 너의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야? (중략)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너의 이웃이야. (중략)”

상처를 주는 나쁜 사람들. 정말 내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아프게 한 나쁜 사람들. 모어가 얘기한 것과는 다르게, 나는 그가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랑으로 이겨버리자.

왜 나는 너의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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